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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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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뭔지 몰랐다가.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다가 결국엔 감사하게 되는 일.

못난 기억을 지워가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는 일.

이별.

굿바이.

 
by 북곽 | 2011/03/17 13:16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환상과 제도
사랑이란 아무리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결국은 환상이고,
결혼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일 뿐인데.
이것 때문에 서운해하고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혹은 그런 나를 내려다보면서)
어리석음이란 무엇인가. 

반지는 사랑과 결혼의 약속이고 그 징표일 뿐인데,
다이아몬드의 캐럿과 몇 세트의 예물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것을 사랑의 척도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남들 따라가는거다. 
제 것이 아닌 것을 제 것이라 여기는 몽매
by 북곽 | 2011/03/17 09:17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패턴
기대와 실망의 패턴이다.

"당신이 이렇게 할 줄 알았지..."
"나라면 이렇게 했을거야..."

기대와 실망은 이렇게 반복된다.
나는...그냥 가만히 있다.

상대의 기대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당연하지 않나.
말도 하지 않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길은 없다.

케어가 필요하다면 케어가 필요하다, 말을 하면 되는거다.
그런 말을 하기 꺼려하고, 혼자 짐작하는 태도엔 무엇이 숨어있을까.
거기엔 어린애처럼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는 유약함과
습관처럼 이어지던 일방의 수혜관계에서 싹튼 막연한 기대밖에 남아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케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 심리상태는 관계를 의존과 부담으로 바꾼다.

사랑은 길을 잃는다.
제발 사랑하는 마음이 태스크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

관계는 행복해야 하고, 사랑은 샘솟아야 하는데
기대와 실망의 패턴속에서 나는 여전히 허둥지둥.

일단 그의 충고를 따랐다.
참았고, 다행이다.

by 북곽 | 2010/12/29 14:25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결정지연
나중에 알았지.
그 결정이 심각한 오류였다는 것을.
그리고 미치도록 후회했지.
후회해도 소용 없었어.
결정은 결정.

그래서 지금 나는 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 결정이 돌아오지 못할 길의 첫걸음이 될까봐.
자기연민에 빠지는 짓은 거지같은 옹졸함과 찌질함이니 접어두고,
정말 정확하게 보고 싶어.

삶은 흑백논리.
이거냐 저거냐.

이거라면 후회하더라도 미련없이 단칼에 자르는 것이고,
저거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어 나를 깎아내는 것.

정답은 늘 정해져있지.
다만 답지를 확인하는 손의 용기가 필요할 뿐.



by 북곽 | 2010/12/27 15:29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후회없음
후회없다.
이런거구나.
 
주위를 조용히 돌아본다.
전처럼 진흙탕 같은 마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는거다.
정말로 그럴 수 있는지를 자문하고
신중히 자답한다.

너 따위 필요없어, 복잡하게 꼬인 마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대상을 인과의 변수로 놓는 게 아니라,
홀로 꼿꼿할 수 있는지, 몰입해서 평화로울 수 있는지 묻는거다.

대상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간혹 그런 판단과 결정을 홀로 번복하기도 했다.
이제와 돌아보면 일정하게는 대상의 문제다.
물론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니가 아니라 나.

후회없다.
by 북곽 | 2010/08/05 11:22 | 트랙백 | 덧글(0)
다행이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다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군대에 한 번 더 갔다와도 좋다고 각오할 정도로, 세상에.
아마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랬을거다.
그래서 외려 다행이지 않나.
by 북곽 | 2010/07/21 09:36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Lonely Planet
론리 플래닛이라는 책이 있다.
외로운거다, 행성이라는 거.

상상 해본다.
대기권까지 솟아올라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아, 정말 론리한 행성이구나'
생각하지 않을까.

깊이 뉘우쳤고, 조용히 톺아봤다.
용서란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끔 그런 일들이 있을거다.

어쩔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동어반복 속에서 론리 플래닛.
by 북곽 | 2010/07/19 15:19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진짜 사랑,
진짜 사랑, 이런 건 사실 없는거다. 
다 첫사랑이다. 
다 진짜 사랑이다. 

그래도.

진짜 사랑, 나중에 온다. 

올 초에 헤어졌던 그녀에게 미워하는 마음 하나없이 진심으로 감사했고,
지난 해 봄에 헤어졌던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봄이네. 


by 북곽 | 2010/05/17 16:00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채만수_마더 테레사, 부자들의 성녀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아귀다툼의 이 삭막한 세상에서 어려운 이에게 베푸는 적선은
칭송할지언정 헐뜯을 일이 아니다.
하물며, 적선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음에랴!
그리하여 아마도 ‘살아 있는 성녀’, ‘빈자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가 숨지자 신문과 방송은,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또 그들도 그렇게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아마도 9월13일 캘커타에서 국장으로 거행된 장례에
정말 기라성 같은, 왕자들, 여왕들, 대통령들, 영부인들,
총리들, 대사들, 저명인사들, 조문특사들이 불원천리 달려와
그렇게 조상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하늘도 울고 땅도 우는’(?) 속에 매몰차게 쏘아 붙이는
한 목소리(“Workers World”, 97. 9. 25)가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그 목소리는 묻는다. 왜 세계의 부자들은 유독 마더 테레사를 그토록 사랑했던 걸까?
대자본의 매스컴들은 왜 무수한 지면과 시간을 들여 그를 본받아야 한다고 야단일까?
마더 테레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수많은 저명 인사들이
왜 자기나라의 빈민들에게는 냉담하기로 악명높은 걸까?
(지난 여름 ‘시민단체 대표’로서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 움직임에 그토록 적의를 드러냈던 이가
한국 조문사절단 대표였음도 우연만은 아닌지 모르겠다).
1백만명의 빈민들이 길거리에 늘어서 애도하리라던 매스컴의 예측을 배반하고
왜 실제는 그 5%도 안 되었는가?
가난한 이들은 은혜를 모르는 것일까?
그를 그토록 유명하게 한 감동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왜 ‘살아 있는 성인’이라 불렸으며, 그토록 많은 인도주의상과 노벨평화상을 받았는가? 등등.
장례식 전날, 그의 후계자인 니르말라 수녀는,
“가난은 아름답다”던 마더 테레사의 견해를 재확인했다.
그에 따르면, 테레사는 가난의 원인이나 사회환경을 바꾸는 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테레사에게 “가난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었고,
따라서 그는 “가난을 올바로 바라보고 받아 들이며,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심을 믿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이것 이야말로 세계 각지의 부자들이 다투어 찬양한 마더 테레사의 메시지였다 .
“가난을 받아들여라!” 그들 부자들에게는 참으로 거룩한 메시지이기에!
마더 테레사는 정의를 말한 적이 없다.
그와 그가 캘커타에 세운 ‘자선 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 ‘사랑의 선교회’는 의도적 오역?)
빈민, 죽어가는 이들, 고아들을 돌보는 데에 자신들을 희생했지만,
그들을 조직하여 권리와 좀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게 하지도,
의료·연 금·교육·최저임금·노동조합 등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불가촉 천민’에 대한 가혹한 카스트적 차별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유력한 부자들은 그를 사랑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포옹하고, 바티칸의 국무장관이 그의 장례 미사를 주관했지만,
로마 가톨릭에서 정말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많은 신부와 수녀들은 추방·억압당해왔다.
토지없는 소작농민들과 가난한 도시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중·남미 ‘해방신학’의 투쟁적인 신부와 수녀들은,
“가난과 질병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는 마더 테레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가난의 원인은 인간의 필요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 체제의 근본적 변혁을 위해 빈민들을 조직하고 지원한다.
마더 테레사는 해방신학의 노골적인 반대자이자 아이티의 두발리에 같은
독재자의 친구·지지자이기도 했다. 그가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도
교황 요한 23세와 60년대의 바티칸 제2공회의 좀더 자유주의적인 사고에 대한 반대자로서였다.
아일랜드가, 유럽 유일의 이혼 및 재혼 금지 헌법규정을 철폐할 것인지 국민투표를 했을 때에는
서둘러 달려가 가난한 아일랜드 여성들에게 ‘변화는 죄악’임을 강론하기도 했다.

‘자선의 선교회’ 본부가 있는 캘커타는 약 3백년 전에 영국동인도회사가 세운
식민주의의 중심지이자 아편무역항이었지만, 그 식민주의를 끝장낸 폭발적 민중운동의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은 주민 1천1백만의 공업도 시이자 인도 최대의 항구도시이며,
주민의 약 3분의 1이 슬럼에서 살고 2 백만명 이상이 ‘홈리스’로 떠도는 빈곤의 도시로,
인도에서 가장 크고 전투적인 노동자계급이 총파업을 조직하곤 하는 저항의 도시이다.
생활수준을 개선하고 부당한 사회에 양보를 강제할 가능성만 보이면,
수십만· 수백만이 거리로 나서 시위를 벌이곤 하는 도시이다.
이렇게 계급의식이 높은 도시에서 빈민들은 ‘가난을 받아들이라’는 마더 테레사의 메시지에 보내는,
특히 서방 언론의 갈채를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부자와 권력가들이 그를 ‘성인’으로 떠받들 때,
캘커타와 세계의 빈민들은 자신들의 가난을 축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끝장낼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겨레21> 1997년 10월 16일 제178호
 
오랜만에 읽었다.
주일이다.
안다, 나도.
어쩌랴, 원래 이렇다.  
원문은 다음을 참고.
http://www.workers.org/ww/mothert.html


"이른바 시민으로서 양심과 윤리로 무장하고 그에 맞게 실천하고 행동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존경과 신망을 얻는, 그러나 고통받는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선 근본적인 변혁이 아니라 동정과 시혜의 방식으로만 접근하여, 고통의 구조를 영속화하는 '저명한 사람들'."(예수전에서)

by 북곽 | 2010/03/22 17:33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1)
괜찮다, 시간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로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여

2003, 시와 시학사


1. 헤어짐 또한 사람의 일이니 거기엔 이유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2. 어째서 사람은 제가 괜찮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게 되는걸까.
3. 괜찮다, 시간. 고맙다, 시간.
by 북곽 | 2010/03/13 10:24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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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바로 주문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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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 책은 읽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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