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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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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의 말
회의는 생각을 나누어 사안을 결정하는 다수의 모임이라고 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생각은 말이다.
생각의 현시가 말이다.

말들이 많다.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말은 숨을 골라 머뭇대는 듯 하다가 확 찔러 들어오고,
어떤 말은 찔러 들어오는 말에 당황하여 터져나오기도 한다.
또 어떤 말은 조심스럽고, 어떤 말은 짧게 결정을 하기도 한다.
어떤 말은 말로 말해지지 않기도 한다.
그런 말은 다음 회의를 기약한다.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잡을 수없는 말들의 향연에 말하는 자의 확신은 더디고
듣는자는 고통스럽다.
말하는자의 말 속에 확신의 골격이 없는 말은 아무것도 움켜쥐지 못한다. 
무력한 손아귀같은 말들이 많은 회의가 줄어야 한다.

회의 시간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by 북곽 | 2009/11/07 21:41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기록



























기록은 찢을 수 있다.
기억은 부분적으로 망각되거나, 왜곡되기도하며 무뎌지고 대체된다.
기록이 기억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남춘천에서 시작했고, 남춘천에서 끝냈다.
안녕, 남춘천.

by 북곽 | 2009/11/07 21:40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가 쓴 <청춘의 문장들>은 형편없었다.
김훈을 읽기 전과 후에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집중하는 일은 어려웠다.
문장이 글로 스미지 못하는 김연수의 책을 읽으며 반대편에서 연필을 쥔 김훈의 손에
돋았을 핏줄이 떠올랐다. 


by 북곽 | 2009/11/05 09:09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북한산
북한산에 올랐다.

알프스의 깎아지른 절벽 대신 오래 그 자리에서 바람을 맞아 닳고 헤진
몇 개의 늙은 바위를 사람들은 봉우리라고 불렀다.
열정, 사랑, 청춘 등 푸른 시절의 가파른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관통해왔을 법한
얼굴을 한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산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늙어버린 육체와 부실해진 무릎을 짚으며 언덕과 비탈을 감당하고 긍정했다.
쉬어 기댈 만한 바위 옆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들이 뿜어내는 입김은 아름다웠다.
늙음의 어쩔 수 없음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돌아갈 수 없는 푸르른 육체를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돌멩이를 밟고 산을 끌어 안는 사람들은 일요일에 산에 있었다.

헬기장으로 꾸며진 정상 언저리의 공터에서 사람들은 마른 김밥을 씹었다.
홍어회와 막걸리를 사들고 올라와 먹는다는 이들도 있었는데, 냄새가 고약했지만
저걸 산 위에서 먹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 정겨웠다.
사람들은 서로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즐거워했다.


산을 내려와 동행한 선생님의 후배를 만나 막걸리를 마셨다.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걸출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는 PD인데
마누라고 자식이고 다 버리고 북한산 언저리에 살며 날마다 산에 오르고 술을 마시며 살고 있다고 했다.
오십이 넘은 그는 수줍음이 많았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경찰에게 매맞는 게 무서워서 열심히 운동하진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할 때,
무서운 것을 무섭다고 말하는 한 사내의 입은 정직해보였다.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통일이 꼭 그렇지는 않아요"라고 말할 때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울음이 차 올랐고
가까스로 씹어 삼켰다.
통일처럼 삶도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었다.
좁은 식당 구석에선 간혹 오줌 지린내가 풍겨 올라왔고 막걸리는 맑았다.

버스를 타고 산을 내려와 지하철 입구로 들어갈 때 오르고 내렸던 산은 꿈 같았다.

by 북곽 | 2009/11/04 21:10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뒤늦은 편지_유하
늘상 길 위에서 흠뻑 비를 맞습니다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떠났더라면,
매양 한 발씩 마음이 늦는 게 탈입니다
사랑하는 데 지치지 말라는 당신의 음성도
내가 마음을 일으켰을 땐 이미 그곳에 없었습니다
벚꽃으로 만개한 봄날의 생도
도착했을 땐 어느덧 잔설로 진 후였지요...
쉼 없이 날개짓을 하는 벌새만이
꿀을 음미할 수 있는 靜止의 시간을 갖습니다

지금 후회처럼 소낙비를 맞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예비된 게 없어요
사랑도 감동도, 예비된 자에게만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아무도 없는 들판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게으른 몽상만이 내겐, 비를 그을 수 없는 우산이었어요
푸르른 날이 언제 내 방을 다녀갔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리고 어둑한 귀가 길, 다 늦은 마음으로 비를 맞습니다
by 북곽 | 2009/11/04 20:47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시간
시간은 약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 될 거라는 말은,
견뎌야 할 시간을 아직 견디지 않은 자의 미망이거나,
이미 견뎌야 할 시간을 견디고, 새롭게 불어오는 시간 속에서 지나온 시간을 망각한 자이다.
한편 시간은 모든 개별에게 똑같이 흐르기 때문에
절대량 환산이 필요없고, 다만 그 하중을 온전히 끌어안으면 된다. 
명확하고 단순하다.

간혹 시간을 왜곡하는 현실도 있는데 그것은 비루하고 참혹해서 굳이 말하지 않으련다.
왜곡된 시간에 사는 인간들이 언젠가 그 절대량을 아무런 도움없이 견딜 때,
하지만 그 때, 늦었다.

* 나는 자꾸,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려고 한다. 어렵다.
by 북곽 | 2009/11/04 12:19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현안문제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이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_김훈, <공무도하>, p.45

돌이킬 수 없다.
돌아가지 않는다.
감정의 배설물과 토사물이 마음의 골짜기마다 쌓였고 부패했다.
추억도 잔정도 모두 털어낸다.
채무관계를 정리하고, 관련된 모든 기억과 기록을 지운다.
이 과정은 과거를 삭제하고, 현재를 견디며, 미래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증오가 명료해지면서 현안문제가 고요히 집중됐다.
나는 홀로 견뎠고 마땅히 받아들였다.
다시는 거들떠 보지 않는다.

by 북곽 | 2009/11/04 09:44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당면
나는 다만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지하철에서 김훈의 문장을 읽어 연필을 꾹 눌러 밑줄을 그으며 울음을 삼켰다.
자칫 감정 조절을 못했다가는 아침부터 무참할 뻔했다.

인턴직원이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조모의 사망 소식을 알려왔다.
복무규정을 확인하여 특별휴가 2일에 대한 결재문서를 올렸다.
결재문서에 사망, 이라는 말을 적을 때 잠시 머뭇거렸다.
내게 닿은 적 없던 한 생애가 두 음절의 단어로 수렴되며 나와 만났다.

나는 다만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by 북곽 | 2009/11/04 08:53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그 사랑
대체를 설정하여 쉽게 떠날 수 있었던 그 사랑. 그 사람.
여전히 튼튼했지만, 새파랗던 생뿌리를 뽑아낼 수밖에 없었던 고약한 이별의 후유증.
신속하고 정확하게 착수하여 실행했던 희미한 음모 같은 감정.

네게로 향하는 그리움과 저주가 한 몸이었으나,
이제 그리움은 잘라내어 버린다.
밝혀내고 싶던 사태와 가파르던 감정의 인과를 뭉개고
하고 싶던, 묻고 싶던 말들을 깊이 묻으며 여름을 지나왔다.

7년의 사랑.
장난같던 이별과 새로운 사랑.
기다림없이 떠났던 그 이유가 대체였으니,
언젠가 세상이 통째로 돌아누울 때 아무 것도 묻지 말라.


by 북곽 | 2009/11/02 13:06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돈은 지엄하다.

전세집 계약을 위해 급히 융통할 돈이 없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모았던 돈들이 어디로 갔는지 돈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옛 애인과의 결혼을 위해 준비했던 몇 개의 주택청약 통장과 장기주택마련저축 통장을
서랍에서 꺼내어 더듬어보았다.
출금한 사실이 없고, 입금한 내역만 빼곡히 흔적처럼 남았다. 
애인이 없으니 이 통장은 애초에 목적하지 않았던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인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보험증서와 적금통장, 주택청약과 주택마련 통장은 닿을 수 없는 돈이어서 잘 만져지지 않았다. 

퇴직 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산정하여 돈을 내어주는 생활안정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도장 무늬 사이로 박힌 인주 찌꺼기를 훑어내고 정성스레 인주를 묻혀 도장을 찍었다.
생활안정자금 대출 신청서의 높은 이자율을 물었더니,
그것은 국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 직원의 도덕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 터져나오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삼켰다.
대출금 이자와 도덕성, 이라는 단어 사이는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멀었다.

부족한 계약금을 메우기 위해 신한은행을 찾았다.
급여이체통장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신용카드의 연체 내역은 한 번도 없었다.
창구의 여직원은 미인이었다. 피부는 햐얗고 매끄러웠으며 입술은 엷은 분홍색이었다. 
몇 가지를 조회한 후 은행 직원은 내어줄 수 있는 돈의 규모를 내게 말해주었다.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지만, 안타까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안타깝고 아쉬운 것은 나였다.
저들이 은행을 찾는 모든 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아마도
은행에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억지와 사정은 통하지 않았다.
은행은 다만 내 연봉과 이미 대출한 금액의 규모와 제 은행과의 거래실적만으로
나를 평가했고, 내게 내줄 수 있는 돈의 액수를 알려줬다.
다만 은행은 10%가 넘는 마이너스 통장 이자의 도덕성을 말하지 않았다.

수중에 없는 돈을 찾기 위해 분주했던 금요일은 짧았고, 겨우 계약금을 마련했다.
애인과 헤어지기 전 봄에, 전세자금을 빌리러 은행을 뛰어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봄은 다 지나가고 없다.
지금은 가을이다.
 
by 북곽 | 2009/10/31 19:22 | 날마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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